사람은 경험에 의해 각자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고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정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막강한 외압으로 인해 무기력을 경험했던 2000년 초부터 주변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게 되었다.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일을 하고 지하철 손잡이를
간신히 잡고 있는 '아버지', 그리고 잠을 설친 듯 헝클어진
머리, 피곤해 보이지만 젖먹이 아이를 업고 있는 '어머니' 의 모습이 새삼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이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개개인의 땀의 수고들이 소중한 보물로 보여서, 2005년부터 집(Home)이라는 오각형의 창 안에 그 가치들을 담고 있다..
나의 작업이 지금의 스타일로 자리매김하게 된 동기는 1995년 동판화용 프레스기가 작업실의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큰 사이즈의 판화작업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하면 최대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했고 불편한 환경은 나의 의지를 꺽지 못했다. 오히려 극복하고자 시도한 여러 과정 속에서 우연적으로 발생한 요소는 지금 작업의 대표적 조형 이미지로 진화되었고 결과물을 만들었다. 붓을 대신해서 자주 사용하는 동판화 도구인 스퀴지, 니들, 칼, 면천, 샌드페이퍼는 즐겨 사용하는 도구이고,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나 마모된 듯한 흔적을 표현하기 위해 건축 재료의 거친 질감 표현에 돌가루를 사용하고 있다. 재료 선택에 있어 고정관념을 버리고 폐철, 부식한 동판, 절단한 잡지, 비즈, 레진, 아크릴 물감과 유화물감 등 다양한 재료를 작업에 접목 하고 있다.
내가 가진 능력과 경험의 토대 위에 수고의 과정을 거쳐 일기를 기록하듯이 작업을 하고 있다.
집을 그릴 때, 지난 흔적들을 마주칠 때면 두 손에 사탕을 움켜쥔 어린아이 같은 행복감에 젖곤 한다. 춤을 추기 시작하면 모든 걸 잊어버린다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 대사처럼 작업에 온 마음을 몰입하다보면 잡념은 사라지고 어느새 그림만 보인다.
어쩌면 나는 계산기 같은 세상이 싫어서 매일 조금씩 그림 안으로 도망 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일상의 보물 같은 수고로운 가치들이 외면되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그렇게 작업 속에서 나는 스스로 '섬' 이 되고, 그림은 나의 베프(best Friend)가 되었다.
(최순민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