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내용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다시 대상화하여 그려낸다는 것에 대하여
장인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처럼 서로 구분하여 지칭할 수 있는 시공간적 영역이 일상에서 경험해 왔던 것과 달리 마치 뒤섞여서 한 화면 안에 공존해 있는 듯한 상황을 그려낸 매우 독특한 회화 작업들을 선보이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있어 철학적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양자론’이라고 하였다. 특별히 작가는 양자론적 세계관에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면 미시세계가 그러하듯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은 없다는 관점에서 작업 해왔음을 밝히고 있다. 작가의 관점에서 볼 때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현실의 세계, 감각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이것이 작가에게 있어 철학적 토대이자 작업의 근간이 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그려낸 시공간을 초월하여 마치 초현실적인 공간을 그려낸 것처럼 보이는 작업들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 혹은 상상적 이미지와 현실 세계를 단순히 혼합하거나 병립시켜 놓은 작업을 한 것이라기 보다는 선형적 시간에 익숙해져 있었고 현실 속 감각 세계에만 머물러 있었던 시선 방식에 시공간을 초월한 이질적 상황을 충돌시킴으로써 보고 감각하는 기존의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키고 존재론적 각성의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작업으로 읽혀진다.
작가노트를 보면 작가는 “내가 인식하는 것을 바라보고 그 순간에 존재한다”는 명제를 통해 결국 자신의 작업은 “수많은 레이어의 겹을 쌓는 작업”이며 그가 그려낸 이미지들은 “인식의 그물망에 떠올려진 것들”임을 밝히고 있다. 인식의 그물망에 떠올려진 대상들과 상호작용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 대상을 그려내는 그 순간들이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순간들임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작가가 페인팅 혹은 선묘적 드로잉으로 그려낸 이미지들은 작가에게 있어 현전(現前,Presence)적 경험의 기록들을 그대로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양자론적 세계관에서 바라보는 세계, 즉 수백 년 된 한국의 광화문과 수십 년 전 비틀즈가 조우하는 것을 비롯하여 다양한 작업 가운데 꿈 속 혹은 기억 속 상상적 이미지를 현실적 상황과 교차시키고 시공간적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작업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역시 드로잉적 선묘의 이미지 영역과 페인팅 방식으로 그려낸 이미지의 영역을 마치 개별적 레이어들이 중층적으로 병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함으로써 시공간적 도약과 시공간적 한계가 양가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것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자 작가만의 현전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양자론자들이 말하는 미시세계에서의 입자와 파동의 관계를 환기시키기도 하지만 이때의 관찰자 효과 즉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여기에는 존재론적 신비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계적 존재로서 인간은 이 세계 전체에 대해 알 수 있는 지식이나 능력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존재자로서 대상과 상호작용하며 무엇인가를 감각하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적어도 그 순간 혹은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레이어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는 그 현전적 경험은 부인할 수 없는 실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이로부터 생각을 확장하여 이 현전적 경험의 레이어와 함께 이것과 교차될 수 있는 또 다른 수많은 시공간적 레이어들을 소환함으로써 여기에서 각 영역의 반복과 차이를 살펴보고 이로부터 인간, 세계, 역사로 지칭되는 시공간적 사건과 순간들 가운데 내포된 함의들을 읽어가고자 하는 것 같다. 사실 인간은 그리고 세계는 파동과 같은 거대한 흐름 그 자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이 놓여져 있는 세계 내 대상들을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입자처럼 물리적 현실 가운데 나타난 이 대상들을 마주하는 현전적 경험을 하는 것은 무엇이라 정의하기 쉽지 않은 존재론적 사유에 어떤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세계에 대한 근원적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인간과 대상 사이에 일어나게 되는 상호작용의 관계를 살펴보게 된다면 인간에 대해, 그리고 세계에 대해 사유하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장인선 작가는 인간, 그리고 세계를 레이어적 층위로 분해하여 자신의 인식 영역 범위 내로 가져와 기록해내면서 이 끝이 없어 보이는 본질적 질문들을 자신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는 세계 속 대상들에 대한 인식과 사유를 작업 속에서 이미지화 하고 이를 다시 대상화하여 인식하는 과정 속에서 이 되먹임의 관계 가운데 인간을 그리고 세계를 통찰하고자 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승훈 (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