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성록 교수 평론글
작성자
김경미
작성일
2023-11-03
조회
121
김경미, 엊그제를 추억하는 풍경
우리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바다를 찾는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긴장이 풀리고 답답했던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인생이 충만하다는 느낌에 잠시 마음이 부자가 된 듯하고 두 팔을 벌려 세상을 껴안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생각은 김경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가 바다를 모티브로 삼은 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다. 사별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그것이다. 사형제를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작가는 포근한 어머니의 양수같은 바다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바다를 볼 때면 작가는 그것이 자신을 말없이 받아주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어머니와 바다가 생명의 발원지란 점에서 의미맥락상 엇비슷하며 이런 사실이 그의 작품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된다. 드넓은 바다, 깊이를 잴 수 없는 푸르름, 지친 기색도 없이 반복되는 물결 등을 보면서 작가는 ‘포용성’에 대해 사색한다. 작가는 “어머니를 품은 바다는 얼마나 넓고 깊은 것일까?” 자문해본다.
하지만 그가 그리는 바다는 평화스런 표정만을 하고 있지는 않다. 평화스런 모습 뒤에는 다른 모습을 숨기고 있다. 들숨과 날숨을 몰아쉬며 포효하는 듯한 사나움이 그러하다. 기본적인 모티브는 바다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의 함의는 인생과 닮아 있다.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있듯이 인생에도 올라갈 때가 있고 내려갈 때가 있다. 그 움직임을 거스르기보다는 곁에서 함께 움직이는 편이 낫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한 바다는 이제 삶의 성찰로 이어지며 더 깊은 의미의 단계로 나간다.
처음 그의 작업과 마주했을 때 인위적 흔적을 느낄 수 없는 파도의 이미지를 표현한 방법이 궁금하였다. 그의 작업은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나 헬렌 프랑켄텔러(Helen Frankenthaler)가 애용한 ‘푸어링’(pouring) 기법에 착안한 것으로 선행 작가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물감을 붓는 방식이 아니라 방수제에 섞어 붓는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같은 수법이더라도 확실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물감에 방수제를 섞으면 색과 색 사이에 수막이 생기며 물감농도가 묽으면 넓게 퍼지고 물감이 진하면 모아지는 것과 같은 독특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독특한 유동성의 이미지는 물감의 농도조절에 따라 형성된다. 우연성에 의한 것이긴 하나 완전한 우연성보다는 구체적 형상의 조성(造成)이란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채롭다.
근래에 작가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테마로 작업을 하고 있다. <바람의 궤>로 명명된 작품이 그것인데 여기서는 우아한 색상과 밝은 색조로 유년시절을 보냈던 옥천을 떠올리며 추억을 더듬어가고 있다. 산과 논, 밭을 끼고 있는 시골의 모습이 그려지고 원두막, 등대, 강물, 나무, 언덕에 걸터앉은 아이, 예쁜 집 등도 눈에 띈다.
<어머니의 바다>에서 보이던 표현적 성향 대신 잔잔한 붓질에 서정적인 분위기, 다채로운 색상이 특징으로 잡혀온다. 유년 시절의 회고는 현재 시점에서 돌아본 과거를 뜻한다. 그러므로 거기에 어떤 감정이나 소회가 접목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고향 옥천은 그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시작된 곳이다. 바다를 테마로 한 그림이 모정과 연관되었듯이 이 시리즈에서도 역시 모정과 연관되어 있는데 그것은 작가가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목단꽃을 닮은 자주색을 기조색으로 삼는 데서도 확인된다. 그러니까 고향이 중요한 것은 어머니와 작가의 이야기가 싹튼 각별한 장소라는 이유에서이다. 그의 화면에는 명료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애수(哀愁) 같은 것이 묻어난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구름에 반쯤 가린 달빛과 하염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바람, 아스라이 멀어지는 산들은 그런 아쉬움을 더욱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목단이 남긴 진한 향기와 허공에 아른거리는 빛의 색깔, 만나고 헤어진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김영랑시인이 말한 ‘찬란한 슬픔의 봄’(“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김경미의 작품을 보면 고향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를 그리며 바다를 응시하는 눈길, 고향과 옛 시절에 대한 추억, 산하를 통한 내일에의 기대와 희망에서 그가 삶을 당연하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시간의 수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삶은 시간의 질서 안에서 쌓여가고 완성된다. 그만큼 시간의 힘은 대단하다. 작가도 예외가 아닌 것같다. 내면에 축적된 시간의 힘은 작업에 큰 동력을 제공한다. 시간을 초월하려는 사람은 주어진 삶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시간을 느끼며 자족하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줄 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대책 없이 허황된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 제한된 시간의 조건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인지하고 자족할 때 우리는 김경미처럼 자신만의 시간의 리듬을 찾아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성록 (안동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