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희 작가를 만나기 위해 그의 공간으로 가는 길에는 신도시 특유의 잘 구획된 공간들이 보였다. 그러나 채 구획되지 않은 곳에서는 공사와 소음이 한창이었고, 여전히 산과 들로 남아있는 곳들도 적잖이 있었다. 하늘과 크레인, 잔디밭이 공존하는 최유희 작가의 기묘한 공간은 이러한 현실 풍경으로부터 출발한다.
최유희 작가의 작품 속에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그의 최근 연작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설장비인 타워크레인이다. 고층 건물 건설현장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중장비는 수직으로 끝없이 팽창하는 자본주의적 욕망 그 자체를 드러내는 기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개발’과 ‘새로움’이라는 근대적 논리로 무장한 채 오만하게 서 있는 이 타워크레인이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유희 작가는 이 타워크레인을 빌딩의 숲으로부터 벗어나 그저 잔디가 무성한 풀밭에 위치시킨다. 지었어야할, 혹은 지어야할 건물은 오간데 없이, 앙상한 외발로 몸체를 지탱하며 서있는 크레인은 목적을 상실한 채 연약하고 무력하게 존재할뿐이다.
오히려 주변을 에워싼 풀들이야말로 크레인을 압도할 듯 넘실거린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풀들 역시 자연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플라스틱처럼 맨질하면서도 공장에서 찍어낸 듯 일정한 방향, 동일한 각도로 휘어진 풀들.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야 할 자연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인공성에 대해 최유희 작가는 “자연물 아래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플라스틱 도시”를 염두에 두었다고 말한다. 이렇듯 작가가 매끈한 평면 아래 구축한 공간은 ‘인공’과 ‘자연’ 사이의 이분법이 파괴되고,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섞인 ‘혼종의 세계’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삶의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보기 좋고 깨끗하며 편리한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 아래, 길 옆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한 줄기 물길조차 인간의 의도와 계획에 맞추어 심어지고 만들어진 도시들이야말로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장소가 아닌가.
한편,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최신작들에서는 이 풀들의 크기가 더욱 커진 것이 눈에 띈다. 이 ‘가공된 자연’은 애초에 아름답기 위해, 혹은 편리하기 위해 심어졌을 터. 그러나 이제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거대해진 몸집으로 빽빽하게 공간을 잠식해간다. 본디 신적인 존재였을 타워크레인은 이곳에 있는 풀을 저곳으로 옮기며 무의미한 노동을 지속한다. 작가는 뽑아낸 (혹은 심겨지는 중)인 풀의 단면을 슬쩍 노출하는데, 그 속이 텅 비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한편, 확대된 풀의 표면에는 풀 자신의 모양새를 반복하는 자잘한 가시들이 돋아나, 프랙탈 구조를 이루는 것이 보인다. 내부는 비어있고 겉에는 가시가 돋아나 공격성이 강화된 풀은, 길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생명력, 통제불가능한 욕망의 본질을 꿰뚫어 보여준다.
이렇게 인공과 자연이 섞이고, 길들여지지 않는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실패하는 공간에 대한 탐구는 작가가 현재 거주 중인 신도시에 자리 잡으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전까지 작가는 강박적으로 느껴질만큼 아주 작은 요소를 반복하여 화면을 채우면서, 화려한 패턴과 리듬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렇게 개별 문양을 증식시키며 화폭을 뒤덮는 성실한 작업 방식의 흔적들을 근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타워크레인의 몸체를 이루는 정교한 선들, 일정한 방향으로 휘어진 풀들과, 풀 표면의 가시, 타워크레인 주변을 에워싼 신체 일부(혀와 가슴 등). 하지만 이미지가 넘쳐흐르는 전작들과 비교해, 최근 작품들에서는 여백이 많아짐과 함께 화면의 구성이 보다 정돈되고 명징해지고 있다.
그의 작업 세계의 변화는 작가로서, 직업인이자 생활인으로서, 그리고 책임있는 가정의 일원으로서 ‘최유희’가 걸어온 궤적과 함께 한다. 여성 작가로서의 어려움, 모녀 관계에서 겪는 다양한 감정들과 딸에 대한 사랑 등. 이전까지 그의 작업세계는 작가 자신의 내적, 심리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번의 이사 후 비로소 주거가 안정되고, 팬데믹 중에 안팎의 관계가 정리되는 과정을 겪으며, 최유희 작가의 작업은 주제와 내용, 형식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의 껍질을 깨고 나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관찰하기 시작한 작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즐비한 타워크레인과 그것들을 에워싼 (곧 없어질) 풀밭들,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지어져 있는 아파트 단지, 깨끗하고 편리하지만 어딘가 이질적인 신도시에서의 삶이었다.
나아가 그의 작업은 현상의 관찰을 넘어서, 현대인의 삶의 조건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자연과 인공물이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며 얽혀들어 근대적 이분법으로는 더이상 설명되지 않는다. 이미 있는 풀밭을 굳이 갈아엎어버리고 ‘속이 텅 빈’ 인공적인 풀을 심는 모순적 행위에 대한 대가가 언젠가는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거대해진 풀’이 보여준다. 이러한 엄중한 경고 가운데 작품 구석구석 배치된 유머와 위트 역시 눈길을 끈다. 크레인의 로프가 유연하게 휘어지며 글자를 만들어낸다거나, 그가 즐겨 그리는 크레인, 가슴, 잔디 등이 칵테일 잔과 같은 의외의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무겁지 않게 전달하는 아슬아슬한 균형은 최유희 작가의 최근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박지현(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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