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워왔지만 지금사회에서 대부분의 소통 방식은 편한 사람들끼리 서로 편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보인다. 딱히 사람들과 연락을 많이 하지 않더라도, 친밀한 몇몇들과 그 관계를 유지한다. 관계가 너무 긴밀해지는 것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체감했다.
나는 그동안 사람에 매달리고 인간관계 속에서 애정을 갈구하고 허우적대곤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을 느끼며 묘한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나의 길과 다른 이의 길이 엇갈릴 때, 굳이 붙잡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소통에 있어서 각자의 편안한 거리감을 유지하게 되어 어찌 보면 인간 소외에 일조하는 소통의 모순이 지금에 와서는 안락한 나의 사적 공간으로 느껴지게 된다. 소통에 대한 양가감정인 것이다.
어찌 보면 정 없는 시대라고 볼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편견없이 대하려 하고, 긴밀한 사람에게는 각자를 존중하고 동시에 나 자신도 존중하는 것이, 좀더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소통의 좌절로 인해 여러 차례 슬픔의 감정을 겪고, 그로 인해 내 안의 나약함을 직시하게 되면서 나는 현시대에 어울리는 소통의 성격에 대해서 생각해볼동안, 이미 내가 그렇게 소통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드러워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와도 같은 것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보다 오히려 강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의식적으로 나의 작업관을 부자연스럽게 연출하려 하지 않음으로서 나의 작업방향도 한발 더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나아간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겪었던 나의 슬픔과 무기력함, 숱한 말들을 반복하고 더듬던 시간 등을 부정하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존중하려 한다. 그리하여 그러한 소통의 모순과 부재를,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수용한다. 그러나 부드러움 속에 나를 지키는, 자존감이 전제된 소통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자존감 이슈는 요즈음의 인간관계속에서 항상 불거지는 무엇이다.
최근에 드로잉 위주로 전시한 개인전 제목은 모데라토 블루(Moderato blue)였다.
음악용어인 모데라토(Moderato, 보통빠르기로 연주하기)에서 따와서 ‘보통 빠르기의 음울함’ 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소통을 갈구하면서도 나와 타인사이에 거리감을 두는 현실에 익숙해져버린 나 자신과 현대인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어떠한 희로애락 등의 삶의 변주 없이 그저 보통으로, 만성적으로 음울함을 안고 살아가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들을 다뤘었다.
상대방과 내가 상처받지 않을 안전하고 아름다운 거리감에 익숙해져 버린 감정 등이 기저에 자리한다. 그리하여 작업 전반에는 무기력하고 음울한, 나약한 나 자신이 나타난다. 또한 더 나아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나타나곤 했다.
지금의 작업방향에서, 정적이면서도 순환구조로 되어있는 그림들은 푸른색조가 주는 음울한 느낌을 정면으로 직시하려 한 결과이다. 시간이 흘러도 잘잘못을 따져가며, 혹은 그 추억에 과몰입한다거나 하여 그 시간을 더듬고 그 시간에 머물러 있었던 나날들은 마치 코발트 안료(푸른색)로 그려진 청화백자에 영구적으로 ‘박제된’ 그림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그 시간으로 인한 경험과 그 시간에 겪은 추억들은 소중했음을 느꼈던 나의 ‘안락한’ 소외감에 대해 시각화하며 관람객과도 공유하고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검은 나비라던지 레이스 등으로 가려진 얼굴들은 소통에 대한 묘한 양가감정들의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