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영 hwang so young

전시 정보

전시 포스터
전시중2025-07-08 - 2025-07-13

숨의결

황소영
작가 황소영
전시년도 2025.
초대일시 2025-07-08 - 2025-07-13
관람시간 오전 11시 – 오후 6시
전시장소
주소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 2층
연락처 02. 3663. 7537
홈페이지 www.42art.com
작품 미리보기
기억이 머무는 곳
숨결이 닿는 자리
둘의 낮
어둠 아래서 자라다
고요한 균형
깊은 곳에서 피어나다
기억의 언덕
겹겹의 시간
조용한 전파
풀빛 소리
열리는 마음
파동의 정원
시간은 흐른다
숨의 흔적
파생하는 존재
생의 리듬
침묵의 방향
전시회 내용

[전시글]


숨의 The Texture of Breath


황소영 작가의 이번 전시 《숨의 결》은존재하는 밀도와 결을 회화의 언어로 번역한 작업이다

자연의 고요한 리듬, 바람과 빛의 움직임, 그리고 이름 없는 식물의 흔적 속에서 작가는 보이지 않는 흐름을 읽어낸다

회화는 작가에게 자연을 해석하는 도구이자, 반대로 자연이 작가를 통과해 표현되는 하나의 방식이다.

작품은 색면 위에 점과 , 단편적인 형상들이 어우러져 무의식의 층위를 구성한다

계획보다 흐름을 따르고, 완성보다는머무름 가까이 닿으며, 작가의 감정과 감각은 형태로 번역된다

반복되는 붓질, 겹겹이 쌓이는 , 그리고 생략된 공간은 기억의 잔상처럼 화면에 남는다.

《숨의 결》은 자연을 재현하지 않는다오히려 자연의존재 방식 닿으려 한다

화면 위에 쌓이는 색과 형상은 생의 파동을 시각화한 것이며, 동시에 작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이는 감상자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건넨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작업노트]

숨의 결

[The Texture of Breath]

 

 

나는 자연의 고요한 결을 따라, 삶의 본질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 가만히 머무는 햇빛, 지나가는 계절, 그리고 그 안에 깃든 흐름과 질서.
그 모든 것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 숨결, 삶의 리듬을 일깨우는 존재다.

 

오랫동안 자연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것은 멀리 있는 풍경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이사이 흐르는 숨결, 빛과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 그리고 이름조차 없는 식물들이 남긴 생의 흔적을 조용히 마주하는 일에 가까웠다.
그렇게 작업은 계획보다 흐름으로 시작되며, 완성보다는 머무름에 가깝게 닿는다.

 

나의 작업은 자연의 구체적인 형태를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화폭 위에서 색채와 선, , 그리고 질감은 자연이 지닌 무형의 에너지를 그려내기 위한 언어로 움직한다.
이는 단지 외형의 묘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내뿜는 숨의 결을 포착하려는 시도다.
그 안에는 내면에서 피어난 감정과 스쳐간 기억들, 그리고 시간을 통과한 흔적들이 겹겹이 스며들어 있다.

 

작업은 캔버스 위에 색면을 단순히 얹는 것에서 시작된다.
마치 오래된 기억의 배경처럼 깔리는 이 면들은 무의식의 공간이 되어주고,
그 위에 점, , 조각난 형상들이 각자의 리듬을 따라 조용히 떠오른다.
손은 머리보다 먼저 움직이고, 감정은 자연스레 형태로 번역된다.

 

재료에도 경계를 두지 않는다.
아크릴, 오일파스텔, , 색연필, , 마카, 콜라주, 때로는 일상 속 오브제까지
이질적인 것들이 자유롭게 혼재되며 화면 위에서 새로운 조화를 이룬다.
회화는 내가 자연을 해석하는 도구이자, 동시에 자연이 나를 통과해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다.

 

나는 작업 앞에 서는 순간마다 매번 처음처럼 마주하려 한다.
무의식에서 흐른 선들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리듬, 색과 색 사이에서 번져가는 숨결.

그것은 내 안의 생명성과 맞닿아 있으며,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존재의 증명이기도 하다.

 

삶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고, 다시 피어난다.
자연은 그 속에서 늘 제 모습대로 존재하며, 그 자체로 완전하다.
그 자연처럼, 나 또한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자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온전히 살아가는 것, 흔들림 속에서도 균형을 이루는 것.
그러한 태도는 나의 작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장면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숨 쉬던 리듬과 숨결이 천천히 드러난다.
이번 전시가 작지만 깊은 쉼이 되고, 각자의 감정이 머물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되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 이 화면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로 찬란하다고 믿기에
나는 오늘도 나의 숨을, 결을, 그려낸다.”


[평론글]

존재의 경계이자 감각의 공유 지점인 ‘결’에 대하여


황소영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숨의 결”이라는 주제로 감각적이며 추상적인 여러 회화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과 관련하여 “자연의 고요한 결을 따라 삶의 본질을 조용히 들여다 본다.”라는 표현을 하였다. 이러한 작가의 언급을 근거해 보면 황소영 작가의 작업을 알아가기 위한 중심적 개념에는 ‘결’이라는 단어가 위치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결’이라 함은 돌이나 나무 혹은 피부처럼 사물이나 생명체의 표피 등에서 무르고 단단한 조직이 반복적으로 겹을 이뤄 드러나 있는 것에 대한 감각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이는 시각적일 수도 있고 촉각적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서로 다른 느낌이 겹을 이루면서 겹쳐지고 연장되어 어떤 특정한 감각으로 인지되는 지점일 것이다.

이에 비춰보면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숨결’보다는 ‘숨의 결’로 표현하고 ‘자연의 고요한 결’이라는 독특한 표현을 하게 된 것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결’이라는 단어를 통해 어떤 감각과 관련된 것임을 암시하고자 했던 것으로 읽혀진다.

사실 어떤 대상을 파악하는 것은 감각으로부터 시작될 수 밖에 없다. 외부 세계의 정보는 결국 감각기관이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 감각의 통로에 ‘결’이라는 경로가 있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결’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감각, 즉 서로 다른 자극이 겹쳐지거나 지속되는 가운데 느끼게 되는 시공간적 감각은 어떤 시각적 패턴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음악적 리듬감을 전달해 주기도 한다. 특별히 무질서처럼 보이는 곳에 겹쳐져 있는 미묘한 질서에 대한 감각 역시 ‘결’이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았기에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여기에 연결시키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작가 자신이 감각하고 알아가게 된 세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통로이자 드러나 있는 것 이상의 숨겨져 있는 어떤 감각적 질서를 느끼도록 만드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어떤 패턴이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리듬과 같은 흐름이 흘러가는 현상을 지속적으로 감각하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특정한 현상 자체에 매몰되기 보다는 그 현상을 이루는 시간의 흐름과 그곳에 겹쳐져 있는 공간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인식 주체의 존재적 위치와 같은 본질적 영역에 대해 알아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매체는 메시지다”라고 하였다. 이는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이나 서사 이전에 이를 전달하는 매체 자체가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매체를 통해 어떤 특정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전달을 하는 통로 자체가 인간의 감각 기관에 영향을 주게 되고 인식에 변화를 주는 것이므로 이 통로에 설정되어 있는 함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매체적 개념일 수 있는 이 감각의 통로 혹은 그 통로에 내재된 어떤 경향성으로부터 대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인간이 보고 듣고 느끼는 세계에 대해 보다 깊이 알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황소영 작가가 ‘숨의 결’을 느끼고 ‘자연의 결’을 따라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인간과 세계에 내재되어 있는 감각의 통로들에 대해 통찰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으로 이해 될 수 있으며 이로부터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와 인간 자체의 본질적 영역에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작가는 이제 단지 자연을 바라보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놓여있는 체계나 구조에 대해 직시하게 되면서 그 안에 깃들여 있는 흐름이나 질서와 같은 영역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러한 영역에 대해 그의 작가노트에서 ‘생의 흔적’ 혹은 ‘무형의 에너지’라고 지칭하기도 하고 ‘무의식에서 흐르는 선’ 혹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리듬’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은 작가의 조형 이념만을 표현했던 것이 아니라 작가의 조형적 특징과 그대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의 작업을 통해 보게 되는데 작업 가운데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레이어들이 완충적으로 겹쳐지면서 마치 생명체의 유동적 변화들이 멈춤과 움직임 사이 궤적으로 남아 있는 듯한 여러 표현들을 통해 전달하고 것은 온통 원초적 감각으로 환원된 존재의 흔적들에 대해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있으며 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현상적 세계 너머로 시각을 가져가고 있음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작가는 자연을, 그리고 삶을 들여다 보면서 존재를 직관하고 생의 리듬과 흐름을 감각하며 우주적 시공간의 구조에 다가서는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그것을 ‘결’이라고 지칭하며 생명의 결, 존재의 결에 대한 감각을 ‘숨의 결’이라고 바꿔 말하면서 감각으로 다가온 세계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그려내고 전달하는 수행적 작업을 해오게 되었던 것 같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의식 속에서 흐르는 ‘순수한 시간’, 다시 말해 ‘지속’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시간을 단지 물리적 차원으로 보기 보다는 의식 속에서 경험되는 ‘내면적 흐름’으로 이해한 것이다.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의식은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었기에 과거와 현재는 단절되지 않고 기억을 매개로 하여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인데, 이와 유사하게 황소영 작가에게 있어서 ‘숨의 결’이라는 것은 마치 의식의 흐름과 같은 체계, 즉 인간과 세계를 관통하는 생명의 흐름 혹은 에너지의 흐름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시간을 통과한 흔적들”이라고 하였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작업은 “내가 자연을 해석하는 도구이자 동시에 자연이 나를 통과한 모습”이라고 언급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작가 자신이 마치 매체적 위치에 놓여있는 것처럼 표현한 이 말은 작가 스스로 자기의 내면 속에 흐르는 의식의 흐름일 수 있는 ‘숨의 결’에 대한 통로가 되고자 했음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마치 생명이 세계 속에서 호흡하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모든 신비로운 과정들을 작가는 회화라는 감각의 장 가운데 펼쳐 몸의 흔적, 숨의 흔적으로 그려내는 가운데 존재하는 것들 것 대해, 그리고 그 존재 방식에 대해 드러내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결’을 통해 혹은 ‘결’ 자체를 감각하고자 한다는 것은 인간을 그리고 세계를 알아가고 접근하는 길을 찾고자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외부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세계를 알아가게 된다고 할 때 감각이라는 것은 매개적 구조를 말하는 것이기에 작가가 말하는 ‘결’이라는 것 역시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숨의 결’로부터, 그리고 ‘자연의 결’로부터 인간과 세계에 다가가려 하고 이로부터 피상적인 차원을 넘어 본질적 영역에 접근해고자 하였다. 이는 감각의 통로를 발견하게 되면서 더 깊은 내적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작업에는 이처럼 현상적 세계 너머의 세계, 그 미지의 것들이 담겨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감각의 영역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존재의 본질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에 무엇이라 해석하기에는 어려워 보일 수 있고 명료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곳에 남겨져 있는 흔적들은 인간과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거대한 에너지의 흔적들이자 미세한 생명의 흐름까지 새겨놓은 흔적들이기에 공감하고 공명되는 지점이 많이 있으리라고 본다.

그렇기에 작가는 이 공감과 공명의 장에 감각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관객들을 초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미술비평)  

작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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