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신 KIM DAE SIN

Text: Artist Note

2016 [전시평문] Paysage 2016-Blanc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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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대신
작성일 2025-01-09
조회 8

Paysage 2016-Blanc II

 

회화는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사조는 세계와 풍경에 관한 고유의 전망을 함축하고 있다. 서양 미술사 속에서 풍경화는 네모난 창을 통해 펼쳐지는 원근법이라는 규범을 통해 때로는 낙원의 모습으로 이상화 되고 때로는 인간의 시각과 만나는 빛의 인상으로 전개되어왔으며, 동양의 산수화는 전통적으로 산과 물의 어울림에 기반을 둔 세계와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질서로 표현되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풍경(paysage)의 의미는 무엇이며 풍경화는 어떤 의의가 있는가? 현 시대의 풍경은 매우 복합적이다. 외부의 풍경을 바라보는 내면 풍경 또한 그만큼이나 복합적이다. 이는 모든 것이 혼재된 환경 속에 던져진 현대인의 단순하지 않은 시선을 반영한다. 인간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세계의 풍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풍경은 급속한 문명의 진보가 낳은 여러 문화 요소들과의 다양한 연계를 통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동시대의 풍경과 함께 있으며 거기에 서로 영향을 끼치는 인간의 사회 문화적 생활 양식을 빼놓고는 풍경을 말할 수 없다.

 

김대신의 풍경화는 그런 점에서 작가에게 투영된 오늘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 중에 '인수봉', 이를테면, 대도시 환경인 서울 가까이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 봉우리가 매연이나 황사먼지로 자욱한, 또는 도시로부터 난반사되는 빛이나 소음 등의 요인에 영향을 받아 어쩐지 상처받은 듯한 황량한 면모로 우두커니 솟아있는 자태로서 제시된다. 도시 주변의 웬만한 산들은 언제부턴가 현대생활의 과도한 경쟁에 지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집단적 강박관념처럼 자리하기 시작한 휴식과 힐링을 위해 찾아가기 적합한 도피처로서 자리하고 있다. 낯익은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아웃도어 복장의 울긋불긋한 사람들의 무리는 난데없이 어릿광대 같은 자신들의 모습 뿐만이 아니라 때로 산 자체의 존재감마저 낯선 풍경으로 소외시킨다. 그것은 상투적인 옷차림만큼이나 유행적이고 집단적인 관습만으로 무심하게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시 주변의 산들은 때로 우울한 연무 속에 멀리 희미한 윤곽선으로만 드러난다.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푸르름으로 여기저기에서 가까이 다가와 있는 듯이 보이는 산들 조차도 푸르스름하고 모호한 외형들이 일견 어딘가 지형학적으로 외계에나 있을 법한 낯섦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디지털 기기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문명에 의해 점점 더 간접적이고 피상적으로 변해가는 삶의 실체 속에서 외부 세계는 그 구체성이 더욱 느슨해지고 있다. 그래서 세계는 낯이 익지만 하나씩 낯선 풍경이 되어간다. 이것이 김대신이 천착하는 풍경화의 요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보여주는 소외된 풍경으로서의 빛이 바랜 세계는 'Blanc' 시리즈의 설치작품에 이르러 일종의 빛의 덩어리로 환원된다. 일반적으로 흰색은 지고하고 성스러운 의미로 그 외연이 암시된다. 외부 세계 멀리 흐릿하게 자리하는 풍경이 그 멀고 깊은 곳으로부터 발산되는 일종의 흰색Blanc의 빛에 의해 정신적인 대상의 차원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가속화되는 현대 문명의 불안한 탈주 속에 자리를 잃고 부유하는 인간을 일깨우고 정화시키는 진정한 정신적 풍경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서길헌/월드벤처아트센터 큐레이터(조형예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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