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해체 지점과 가변적 공간 이미지, 그리고 그 상상적 가능태에 관하여
보리윤 작가의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금까지 작업해온 것들을 메타적 차원에서 다시 읽기를 시도하는 자기 해석적 전시라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먼저 보리윤 작가의 과거 작업들을 현재 작업과 비교해 보면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 텍스트의 해체라는 문제에 주목해 오면서 이를 개념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작업 과정에서도 물리적 실체인 실제 인쇄된 텍스트를 파쇄하고 이를 토대로 또 다른 차원 혹은 체계라고 말할 수 있는 재구축된 이미지를 만들어 냄으로써 두 체계가 서로 맞닿아 있는 상황에서 그 맥락이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독특한 작업을 선보였었다. 물론 이때 이미지라고 지칭한 것 역시 일종의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작가가 눈 여겨 본 지점은 가시적 실체로서의 책이나 문서 등, 텍스트가 갖고 있는 권위 혹은 힘 등에 대해 실제 파쇄 행위를 할 때 맥락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작가는 텍스트라는 개념적 정의의 범주에 대한 문제보다는 텍스트라고 하였을 때 그것의 지시성이나 논리적 인과관계가 만들어내는 서사와 그로 인해 구축된 힘을 문제시 하였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이를 해체하고 동시에 이것이 이미지라는 감각을 기반으로 한 다른 체계에 의해 재구축되었을 때 드러나는 현상과 이에 대한 인식적 차원의 변화 등에 대한 작업으로 점차 변화하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 작업들과 차별화되는 두 가지 다른 차원의 작업들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먼저 그 첫 번째는 더플럭스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인데 표면상 과거 전시로부터 작업방식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과거 전시와는 일정한 차이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과거 작업에서 텍스트의 서사가 해체된 지점에서 드러난 것은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이미지로 구분할 수 있는 그러한 것들이었다. 텍스트 대신 드러나 있는 이미지는 어떤 특정한 사물로 식별 가능한 이미지로서 배경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단순한 형태의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미지는 특정 대상에 대한 이미지가 아니라 마치 어떤 풍경의 일부처럼 보이고 있으며, 일종의 이미지적 서사를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 담긴 구성적 화면인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텍스트가 해체된 지점에서 특정 사물들의 관계가 이미지 형태로 드러나 보이도록 캔버스 위 표면적 요소들을 재구축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전시 주제를 보면 보리윤 작가는 이러한 작업 행위를 ‘편집’이라는 말로 요약 하였다. 그런데 이는 임의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가 이전 작업에서 해왔던 행위들에 대한 통찰로부터 특별히 선택한 용어로 보인다. 이전 작업의 경우 단순히 텍스트를 해체하여 이미지로 변환한 것이 아니라 개념적 차원에서 보면 텍스트의 해체 지점으로부터 생성된 이미지들이 결국 또 다른 서사를 구축하게 되는 상황, 즉 또 다른 체계의 텍스트가 생성이 될 수도 있음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정된 영토의 기능을 해체하고 탈영토화 하는 유목적 사유와도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 보리윤 작가의 이 같은 작업방식 및 사유방식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 속에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존의 텍스트들에 대해 감각을 토대로 하여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소이자 변형된 이미지가 생성되는 장소가 되도록 만든 최근 작업들에서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점들은 결과적으로 두 번째 더플로우 공간의 전시에서 더 명확하게 보여주게 되는데, 여기서는 이전 작업과는 더욱 차별적이며 변형된 방식의 작업으로 발전되고 있다. 이때부터 작가는 자기 보존과 생성의 욕망을 가진 산출된 이미지로부터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부분들을 공간적 구조의 결합방식에 의해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그의 작업은 일견 건축적 공간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 여기에는 고정 불변의 체계는 없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용 가능한 공간적 상황만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하나의 체계와 그것과는 다른 체계 사이의 결합 혹은 마주침이 생성해내는 것들이 예상치 못한 미지의 것들을 들춰낸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작업을 보는 이들에게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함께 여기서 비롯된 상상력이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시각적 예측과 함께 파생공간에 대한 상상적 경험을 촉발하도록 만들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그의 작업이 공간 배치의 다양한 경우의 수 가운데 그 일부를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독특한 방식의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보리윤 작가의 작업은 고정된 건축 구조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상에 의해 얼마든지 추가되고 변형될 수 있는 건축 구조물에 잠재된 가상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상상 속 미지의 영역의 일부를 미리 보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보리윤 작가의 작업은 그가 선택한 용어처럼 ‘편집’이라는 행위가 그 중심적 이슈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작업 결과물들이 고정되거나 고착될 수 없는 항상 변형 가능한 것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그의 작업 방식은 단순한 일반적 ‘편집’ 행위와는 차이가 있으며, 그가 말하는 ‘편집’이란 상호 텍스트적 맥락에서 관계성 속에서 다시 고찰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보리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이처럼 일종의 유연성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보았기에 작가 역시 전시주제를 제시할 때 이를 ‘편집’이라고 지칭하면서도 동시에 고정된 무엇을 산출하기 위한 ‘편집’ 행위와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고려하여 그 마지막에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를 달아놓아야 했던 것 같다.
이러한 흐름에서 볼 때 텍스트의 해체와 재구축으로 일컬을 수 있는 보리윤 작가의 과거 작업들은 결국 누군가에 의해 편집된 것일 수 밖에 없는 텍스트들을 차용하여 그 안에 내재되어 있거나 일종의 편견처럼 고착된 부분들에 대해 작가가 개입함으로써 기존의 것들을 해체하고 이를 다시 ‘편집’ 혹은 ‘재편집’하는 행위와 같은 과정이 되었음을 작가 스스로 확인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작가가 염려하게 된 것은 자신의 작업이 또 다른 고착의 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그의 작업이 끊임없이 변화 혹은 진화 가능한 상태가 되도록 하고자 하였던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작가는 자신의 작업 행위를 ‘편집’이라고 지칭하면서도 그 행위가 항상 ‘탈편집’적 위치에서 읽혀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실제와 상상의 유기적 결합으로부터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과 함께 가변적인 공간 구성 위에 프레임 자체가 함께 드러나 보이도록 하는 작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작업은 이전 작업들과 달리 고정된 어떤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미정형의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되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사유방식과 작업 태도가 그대로 읽혀지는 부분이다. 작가는 공간 안에 잠재된 가능태 중 일부를 선택하고 이를 돌출적으로 나열하듯 보여줌으로써 각 작업 사이 간극에서의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지점들을 작업과 작업 사이에서 상상하도록 만들고 있는데 이는 특별히 이번 전시의 차별적 특징이자 그의 작업을 읽어내는데 중요한 지점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리윤 작가는 이처럼 텍스트의 해체를 넘어 가변적이며 상상적인 공간의 회화적 적용 가능성을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경직된 사유로부터 탈주하여 변형과 상상으로부터 시작된 유목적 사유의 가능성과 방법을 우리에게 제안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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