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매체로서의 텍스트, 그 매개적 위치로부터 읽는 ‘Logos’의 의미에 대하여
박현철 작가는 모노크롬의 간결한 색감이 특징적인 캔버스 위에 한지 종이죽을 사용하여 하나하나 입체로 제작한 한글과 영문 텍스트 형태 의 오브제를 촘촘히 부착하고 나열시켜 화면을 가득 채움으로써 미니멀한 색면 위에 텍스트가 전면화 되는 방식의 매우 독특한 작업을 해오 고 있다. 작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가 사용하는 한글이나 영문들은 성경에서 인용한 문구들이기에 일단 그의 작업을 종교적 맥락에서 읽 어낼 수 있겠으나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 태도를 읽어보면 작가는 매체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의 중첩되는 부분으로부터 자신의 작업 개념을 끌어내고자 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작가가 자주 전시 주제로 제시해 온‘Logos’라는 단어의 상징적 의미에서 드러나고 있으며 작가가 작 업에서 자주 언급하는‘빛’이라는 단어에서도 잘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작가가‘Logos’나‘빛’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이 유가 서로 다른 위치 혹은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고 매개하는 기능과 역할에 주목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 가는 단지 필사하듯 성경 내용을 반복해서 옮기는 작업을 한 것이라기 보다는‘Logos’나‘빛’과 같은 단어들이 상징하듯이 좀 더 본질적인 측면의 내용을 자신의 작업에 담아내고자 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보게 된다. 특히 작가가 주제로 내세우는‘Logos’는 사물과 우주의 본질이 나 원리의 의미로 해석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말, 이야기, 언어라는 기능적 의미도 있기에 이로부터 읽어내게 된다면‘Logos’는 인간과 인 간, 인간과 신 사이의 매개적 체계를 말하는 것이 된다. 고대 철학자 플로티누스(Plotinus)는 로고스를 인간과 신 사이의 중개자로 보면서 인간 의 이성적 특질로 보았는데 작가는 아마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를 주목하고 이러한 의미를 자신의 작업에 가져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작업노트를 보면 작가는 지속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해 고찰해오면서 시공간적 한계를 지닌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순간과 영원의 시 간성을 대비시켜 보기도 하고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과 같은 물리적 현상적 상황을 대비시켜 보기도 하면서 이는 인간의 존재론적 위 치를 직시해왔음을 보게 된다. 찰나에 불과한 현실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가 신앙하는 영원의 삶을 바라볼 때마다 간극과 한계를 더 깊이 직 시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눈 앞의 현실적이고 현상적인 부분에 경도될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무한한 신비의 세계, 신앙의 세계는 접 근 불가능하게 보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 간극과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 고민해왔던 것으로 보이며 작업을 해오면서 그 방법을 찾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연결의 지점, 매개의 지점을‘Logos’에서,‘빛’에서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며 이는 자신의 작 업에서 의미를 나르는 텍스트가, 단색으로 압축된 색이 이러한 기능을 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가라는 것, 그 존재적 위치가‘Logos’나‘빛’의 역할 혹은 기능과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예술가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 들을 다루지만 이로부터 비가시적인 세계를 표현하려 하며 그 표현은 순간에 느끼는 외부 세계에 대한 감각을 토대로 하고 있음에도 이로부 터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불멸의 세계를 예술적 맥락으로 가져와 이를 표현해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보면 매개적 기능과 역할 을 중심적 주제로 선택하고 이를‘Logos’라는 것, 즉 말 혹은 언어처럼 전달의 기능, 매개의 역할이 해내는 신비한 기능을 드러내 보여주 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에는 특별한 시사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말이나 언어, 빛과 색, 그리고 말과 텍스트와 같은 매개물 혹은 매개적 구조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 즉 작가가 작업을 통해 보여주려 해왔던 것들에서 직관하게 되는 것, 즉 가시적인 세계로부터 비가시적 세 계를, 순간으로부터 영원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로서 신과 인간, 이상과 현실이라는 간극 사이에서 어떻게 보면 모순적일 수 있는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 사이의 간극을 넘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매개자, 중개자로서 위치와 역할을 심층적으 로 고민한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는 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의 회화 작업 가운데 매개적 지점에 텍스트를 상징적 물질이자 기표로 가져오고자 했던 것이고 이로부터 텍스트와 텍스트 의 의미뿐만 아니라 빛과 색이 매개하는 감각의 세계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성경이란 신과 인 간을 잇는 도구로서 일종의 가교와 같은 상징물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성경의 텍스트를 내용을 표기하여 그대로를 읽어내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기 보다는 성경 텍스트의 상징적 위치만을 캔버스 위에 덧입히되 입체적 오브제의 공간성을 부각시키 고 단색으로 압축된 색감에서 전해지는 빛의 느낌들을 강조함으로써 이해하는 것 이상의 세계를 감각해 보도록 만들고 이로부터 현실 세계 의 한계 너머에 대하여 상상하게 하고 그 상상 공간을 통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자 했던 것이다. 작가 는‘Logos’를 만들어내고 이를 화폭에 그려내는 작업을 해 왔지만 작가 스스로 이 일련의 작업에 대해 텍스트가 아니라‘빛을 그리는 것’이 며‘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말해왔음을 보게 된다. 인간과 신 사이의 매개물인‘성경 말씀’은 단지 텍스트가 아니라 작가에게는 빛이 비추는 것과 같은 경험이었으며 그것은 캔버스 위의 색과 형이 조합되어 감각을 전해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적 경험과 유사한 것이었음을 의 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텍스트를 자세히 읽을 수 있도록 명료한 텍스트를 보여주기 보다는 대략의 텍스트 내용 을 감지할 수 있는 부분들을 남겨놓는 것과 함께 그 성경의 텍스트 내용을 통해 감각하게 되었던 지점들을 아주 간결하고 명료한 색감과 텍스 트 오브제가 전해주는 촉각성을 통해 전해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경험한‘Logos’라는 것은 단지 알파벳으로서 의미전달 역할을 하는 도구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감각을 일깨우고 감각 이상의 것들을 감지하도록 하는 매개물이었음을 말하고자 한 것 이다. 사실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것, 이해하고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인간으로서 한계 지점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러나 작가는 그 한계 너머를 향할 수 있는 길을‘Logos’혹은‘빛’처럼 직관에 의해 상상적 방법으로 감각할 수 있는 매개적 지점을 작업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그의 작업을 감상하는 이들에게‘Logos’를 의미 전달 도구로서의 문자 혹은 물질적 가시 세계 너머를 향해 감각기관을 열어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 하고 있다. 인간 한계 너머로 도약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이승훈(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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