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매체 시대에서의 기억과 감각 그리고 자아의 위치에 대하여
신정순 작가는‘기억저장소’를 주제로 하여 기억과 경험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사유하는 방법에 대해 탐색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특별히 이번 전시는‘디지털 기억’이라는 명제를 부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작가는 언젠가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해 두었던 과거의 사진과 자료 등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자신의 일상적 경험과 기억 작용과 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고찰하게 되었으며 현재의 작업은 이로부터 진행하게 된 것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이후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일상의 구체적인 모습들, 다양한 상황과 사건들을 디지털적인 방식으로 저장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로부터 기억을 보완하거나 심지어 교정 및 교체하는 일이 삶의 일부분이 되고 일상화 되는 상황이 되자 이로 인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기억이라는 부분을 다시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이와 같은 기억과 인식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가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가운데 작업을 해오게 되었던 것 같다.
그의 작업을 살펴보면 작가가 과거 디자인 관련 직장 생활을 하면서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해 두었던 디자인 샘플 이미지나 의뢰서 및 기타 서류 등을 작업에 가져와서 캔버스 위에 회화 작업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으로 일정부분을 변환시켜 새롭게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디지털적 방식으로 저장된 것들을 단순히 가져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및 기억과 관련된 데이터들에 대해 과거라는 시간적 맥락이나 디지털 데이터가 저장되는 방식과 같은 매체적 맥락 등에서 벗어나 현재 시점에서 다시 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현재의 삶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다시 재맥락화 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색깔을 바꾸고 매체를 바꾸는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재현물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에 의해 생성된 창조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 역시 이에 대해 그의 작가노트에서 이와 같은 작업에 대해“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과거 기억 사이의 포괄적 중재”라고 지칭한 것은 기억 작용에는 바로 무엇인가 변환이 있을 수 밖에 없기에 이에 대해 작가는 스스로 개입하고자 하는 것이며 작가는 이를 그의 작업에서 중재의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기억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경험함에 있어 관찰의 시점이나 토대가 달라질 때 얼마든지 다르게 기억으로 남게 되는 특성이 있다. 특별히 신체적 기억이 아닌 디지털적 기억, 즉 사진, 영상 등의 방식으로 복제되어 디지털적인 방식으로 변환되고 저장하게 될 때 필수적으로 일정 부분만을 저장할 수 밖에 없고 이때 해상도나 기타 정밀도가 완벽하게 반영될 수는 없게 된다. 물론 마샬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은 매체라는 것은 인간의 확장으로 보고 디지털 매체로 확장된 인간의 감각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나 감각과 인식의 확장에 따른 차이는 발생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 차이로 인해 손실이 발생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지점에 대해 주목하면서 그 차이를 다시 자신의 현재 감각으로 채워 넣고 변형시킴으로써 매체의 변화로 변경된 기억 부분을 보완하고 다시 자아의 일부분으로 가져오고자 했음을 보게 된다. 작가는 디지털 환경 가운데 확장되고 변형될 수 밖에 없는 감각에 종속되기 보다는 다시 인간의 것, 인간의 감각으로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며 디지털 시대에 다양한 정보의 교차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디지털적 복제 방식뿐만 아니라 아날로그적 요소, 즉 사진 이미지에 망점이나 픽셀과 같은 요소를 드러내거나 디자인적 패턴이나 텍스트까지 등장시킴으로써 다층적 차원에서 혼성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색을 변화시키거나 드로잉적 요소를 가미하여 회화적 제스춰를 증폭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것들은 디지털적 기억으로 변환된 것들을 현재의 시점과 감각으로 변환시켜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과 자아의 영역으로 복원하고 삶을 구축하고 있는 부분들을 종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자 한 작가의 탐구이자 노력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기억으로 연결된 자아에 대해 직면하려 하고 디지털 기억으로 보완적으로 저장해 두었던 기억들까지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처럼 디지털을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바꾸거나 저장된 기억을 상상적 생성의 이미지로 변환하는 일을 수행해 가는 과정에서 현대 사회 속에서 자아를 구성하는 것들에 대해 통찰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며 그 통찰의 지점을 이제 전시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훈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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