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림 Yoorim Kim

Text: Artist Note

[] 2921 전시서문_갤러리 더플로우
작성자 김유림
작성일 2023-10-19
조회 90
느끼고 감각하는 책으로부터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의 이면’에 대하여 김유림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책의 일부분을 확대하여 사진으로 담아낸 작업들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전시에서 한지 등을 사용하여 책 혹은 페이퍼를 오브제 설치 형식의 작업으로 보여주기도 하였는데 최근에는 이를 카메라 렌즈 안에 들어온 피사체의 형식으로 바꾸고 이를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작업의 내용은 같을 수 있으나 자신이 책 작업을 통해 발견하게 된 감각적 측면을 부각시켜 그 시점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과거 그의 작업에서는 “비워진 언어”라는 주제를 통해 언어가 있었던 자리와 그것이 비워진 이후 드러난 현상,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감각에 집중하여 작업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언어들로 채워졌던 책의 스토리 혹은 하나의 작은 역사일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의 이면” 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의 심층적 지점을 탐색하는 작업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브제 설치 작업에 비하면 사진이라는 작업은 입체적 시각이 아니라 하나의 단면만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 매체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발견하게 된 것, 감각하게 된 것을 카메라의 렌즈의 시점에 일치시켜 관객들과 그 일치된 지점으로부터 감각의 내용에 대해 교감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책이라는 형식과 물질적 현상에 의해 분산되기 쉬운 시점을 사진 작업을 통해 좀 더 자신이 발견하게 되었던 감정의 발화 지점에 더 근접시킴으로써 언어로 채워져 있었어야 할 책에 대하여 그것을 비울 수 밖에 없었던 작가 자신의 심리적 상황을 마주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위치를 “이야기의 이면” 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비워진 언어” 이후의 이야기들을 풀어가고자 하였던 것으로 읽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시점의 마주침을 통해 교감할 수 있는 감각의 내용들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그 감각의 내용은 작가가 그의 작업노트에서 밝힌 것처럼 흔히 책에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인간의 감정에 대한 텍스트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 그 자체일 수 있다. 책에 기록된 텍스트처럼 간접적인 방식에 의해 인간의 감각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라 ‘감각 그 자체를 교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지점에 대해 작가는 주목하게 되면서 이를 작업에서 해결해 나가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책으로부터 텍스트를 비워내는 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오브제 설치 작업의 경우 시각의 분산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므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느끼게 되었던 감각의 지점 속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어들임으로써 시선과 시선의 마주침을 만들어내고 이로부터 교감의 깊이를 한층 더 이끌어내고자 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작가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의 이면”이라는 것은 어쩌면 특정한 감각, 혹은 감정으로 한정 지을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작가는 그 구체적인 것들 것 기록해 놓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지에 먹물을 묻혀 뜯어내면 드러나는 섬유질은 언어로 적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을 나타낸다.” 라고 하였다. 작가는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감정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같은 언어적 소통의 한계 지점을 경험하게 되면서 마음과 마음이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작가는 그 과정에서 한 권의 책으로도 전달할 수 없는 감각, 혹은 감정들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책에 있는 수많은 말들을 비워내고 그곳에 쓰고 싶었던 텍스트들의 지층 속에 퇴적되어 있는 느낌들만 남겨놓는 것 아닐까 라고 생각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특별히 그 느낌의 순간, 느낌의 위치 자체를 특정하여 카메라 렌즈 안에 노출시키는 방식을 통해 “이야기의 이면”에 있는 정서와 감정이 소통되는 길을 열어놓는 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어떤 특정한 감각이나 정서를 만나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마다 느끼게 되는 정서와 감각을 마주하는 장소를 제시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관객들 역시 아마도 특별한 어떤 감각 혹은 감정의 내용을 전달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제시한 시점으로부터 감각의 순간과 위치를 마주하면서 책으로부터 전달받을 수 없었던 정서와 감정에 대한 느낌들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텍스트의 행간에서 숨은 내용을 읽을 수 있듯이 책을 덮고 난 이후 그 이면에서 교감하게 되는 정서와 감정은 아마도 이런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작업에서 이렇게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읽는 책이 아니라 느끼고 감각하는 책을 작가는 이처럼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승훈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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