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림 Yoorim Kim

Text: Artist Note

[] 2021 작가노트 _ 사이아트 스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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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유림
작성일 2023-10-19
조회 116
감정은 언어로 표현되어 말과 글이 된다.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한 감정들은 죽어서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다. 내 안에는 버림받은 감정들이 쌓여있고, 나는 가끔 그 안에 매몰되기도 한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는 한지로 책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내가 만든 책에는 글과 그림이 없다. 애초에 언어화에 실패한 감정에 다시 언어를 붙이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대신 한지의 결을 쌓아 하얀 공백을 메운다. 한지는 닥나무의 긴 섬유질로 만들어져 물로 적셔 뜯어내면 숨어있던 결이 깃털처럼 드러난다. 한지의 깃털을 겹치고 엮어서 책을 만들면 갈피를 잃었던 마음의 행간을 찾은 것 같은 흐뭇함이 든다. 종이를 접고 자르고 꿰매고 도려내고 뜯고 말리는 수행의 시간이 쌓여 한 권의 북오브제가 만들어진다. 한지로 만든 북오브제에 때로는 먹을 이용하여 색을 입힌다. 먹은 식물의 기름을 태워 만들어진 그을음을 아교로 압착하여 만든 것이다. 재가 하늘에 날리듯 한지의 결에 스며들면 농담의 차이만으로도 내면의 깊이를 형상화할 수 있다. 작업을 통해 손끝의 체온을 책에 담고자 한다. 딱 떨어지는 이미지가 아닌 한지의 결이 진동하는 비정형의 이미지를 만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언어가 멈춘 곳, 마음의 파동이 머무는 곳이 내가 만든 북오브제이며, 앞으로 이 추상의 공간을 더욱 넓혀 온기를 줄 수 있는 그래서 스스로가 위로를 받는 작업을 해나갈 것이다. 2021. 김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