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단편으로서의 ‘매일 매 순간’과 그 관념 너머의 전체로서의 양가적 체계에 대하여
최유희 작가는 이번 전시 주제를 매일 매 순간(Every Day Every Moment)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번 전시가 전해 주는 의미를 좀 더 깊이 음미해 보려면 작가는 왜 이처럼 평범해 보이는 말에 주목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한 걸음 더 들어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말들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한번 더 생각해 본다면 사실 서로 모순적인 개념을 연결시켜 만든 관념적인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도 모순적 의미의 말들을 연결시켜 신조어를 만들어내거나 매우 일상적인 말들로부터 비일상적이거나 모순적 의미의 틈새를 찾아내서 그 의미의 심층부로부터 자신의 작업을 풀어가는 태도를 자주 보여왔었다. 작가는 과거 여러 전시에서 주제로 'Hideholic', ‘A glorious day’, ‘Black Rain’, ‘What’s important?’ 등과 같은 명제를 사용하였는데 이를 작업 내용과 비교하여 살펴보면 작가는 일관되게 너무 평범해 보이는 말을 다른 맥락과 교차하여 사용하거나 단어의 일부분을 서로 이어 붙여 사전에 없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해 왔음을 보게 된다. 이번 전시 주제인 ‘매일 매순간’이라는 말 역시 의미소를 분해하여 ‘매일’이나 ‘매 순간’이라는 말을 각각 살펴보게 되면 ‘매(Every)’는 모두, 전체, 항상 등과 같은 의미로 아날로그적 성격을 띠고 갖고 있는 반면 ‘일(Day)’이나 ‘순간(Moment)’은 수로 셀 수 있는 개념으로 디지털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적인 아날로그 영역과 임의적이고 관념적인 수적 개념의 영역, 디지털적 개념의 영역이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인데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음에도 작가는 혼성적으로 연결시켜 일상적 의미 너머로 시선을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이러한 방식으로 그의 작업을 풀어내려 한 이유는 아마도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작업 역시 이와 같은 조형적 수사법을 통해 일상적이고 직접적인 의미 너머에 숨어 있는 여러 층위들 불러냄으로써 변형된 의미들을 자신의 작업에 담아내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의 욕망을 암시하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파편적으로 작업 안에 의도적으로 삽입해 놓은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의 작가노트를 살펴보면 신도시, 건설장비, 혀, 가슴, 물 등의 이미지는 일차적으로는 목표의식, 욕망, 욕구등을 지시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방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작업의 맥락 전체를 보면 부끄러움, 모성애, 생명력 등을 암시하는 내용이 함께 담겨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 이미지들은 동시에 욕망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유희 작가는 이와 같이 양가성을 띤 이미지 혹은 언어를 선택함으로써 그 간극 사이에서 자신만의 차별적 예술 담론을 풀어가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 태도는 그가 작업 초기부터 발견되고 있는데 패턴적인 조형 요소를 작업에서 중요한 개념적 요소로 사용하여 이미지를 생성해냄으로써 작업에서 차이를 만들어내거나 반복하는 작업을 해왔던 부분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들뢰즈가 말하는 ‘사유의 이미지’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인데 작가는 그 가능성 자신의 작업 가운데 탐색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인간 사회에서 일상적 삶으로 여겨왔던 부분에는 임의적이며 관행적인 전제들이 많다고 보았기에 작가는 이 지점에 차이를 만들어내고 반복하여 작업하는 가운데 잘못된 전제로부터 벗어나 발생적 사유의 가능성 모색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최유희 작가는 생경함과 익숙함 사이에서, 그리고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은폐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향유의 패턴과 은폐의 패턴을 사용함으로써, 그리고 이를 반복하거나 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욕망에 대해 그리고 욕망이라 생각했던 곳에 겹쳐져 있는 생명력이나 모성애에 대해 드러내면서 작가적 시선 방식에 대해 은연중에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이와 같이 중층적이고 심도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풀리지 않았던 인간의 문제, 예를 들면 결핍의 문제, 불안의 문제, 강박이나 혼란스러움과 같은 문제 등에 대해서 단선적 시각보다는 좀 더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방향에서 해결 방식이나 해석의 관점을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결핍이나 불안 혹은 강박과 같은 인간 내면의 문제라는 것이 단지 인간의 욕구나 욕망의 뒷면에 후속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문제라기 보다는 욕망, 욕구, 생명력, 모성애 등과 같이 인간을 형성하고 있는 보다 근원적인 차원의 연결고리에서 균열 혹은 간극이 발생된 것이거나 전체의 밸런스가 무너지게 된 것일 수 있음을 작업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그 전체를 욕망이나 욕구로만 설명할 수도 없고 반대로 모성애의 힘이나 생명력의 효과로만 이해될 것도 아니다. 일상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매일 늘 똑 같은 날들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어느 하나 같은 날일 수 없고 무수한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순간순간에도 역시 그러하다. 그 모두가 하나이지만 동시에 매일 날마다 다르고 매 순간이 모두 다르다. 그렇다고 하나하나를 모두 모아 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전체로서의 하나와 같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삶에 관성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임의적 전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차이를 만들어내며 다른 시각을 찾아내고 다른 사유를 하는 행위만을 반복해서 해야 될는지 모른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그러한 행위를 반복하기를 연습하고 실행해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을 감상하게 된다면 이와 유사하게 다르게 바라보려고 하고 다르게 사유하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으며 오랜 시간 이를 반복하는 가운데 여기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작가가 작업을 통해 제안하는 것처럼 ‘매일 매 순간’이 진부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욕망할 수도 있고, 동시에 생명력으로 넘쳐나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
이승훈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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