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적 순환체계로서의 조형세계
김리천 미술평론가
하나의 작품은 작가의 심상을 반영한다. 작가가 생각하고 의도하는 모습이 작품을 통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드러나는 모습이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간에 작가의 삶과 의식은 자연스럽게 표출된다. 어쩌면 ‘작품은 곧 작가’라는 등식처럼 말이다.
작가 허진은 바로 이러한 등식에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그것은 그의 삶이 작품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예술적 삶’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 그의 삶과 예술이 완결 아닌 과정의 한가운데에 놓인 상태라는 점에서 앞으로 어떠한 변모를 보일지는 속단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의 예술이 삶의 형태와는 무관하지 않다.
사실 허진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주제는 자신의 일상적인 체험에 초점을 맞춘 것은 문명의 현대화에 따른 인간정신의 황폐화를 그냥 방관만 할 수 없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표피적인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며 자신의 삶과는 맞아 떨어지지 않는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과는 구분된다. 굳이 삶과 예술이 일치해야 한다는 당연성은 없지만, 예술이 삶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허진의 작품세계는 삶 또는 일상적 체험의 진솔한 표출로서 그 조헝적 미술을 획득하고 있다.
“역사적 변천에 따라 세계에 대한 합리적 관조를 중시하고, 인간이성의 해방을 추구해온 합리적 성향과 극심한 문명의 현대화는 인간부재의 문화를 산출하기까지 되었으며, 작금에 이르러서는 고유한 전통적 가치관과 문화양식이 붕괴되고 인간정신의 황폐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현대문화의 제문제에 대한 해결점이 될 수 있는 방법의 일환으로 애매한 추상성보다는 명확한 성격을 지닌 형상성에 주목하고 이를 작품에 도입하여 서술적으로 풀어보는 방향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작가의 이와 같은 언급은 작품의도를 명로하게 드러내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것은 현대문명에 대한 문제제기를 전제로 한 형상성의 표출로 축약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주제인 일상적 체험들은 단순한 일개의 회고적 기술이 아닌 확장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 의미는 어떻게 보면 작품의 형식보다는 내용이 강조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작품이 일상적 체험을 주제로 하고, 그 주제를 형상성으로 풀어가면서 분명한 작품의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작가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작품의 내용’ 표출에 대한 고민을 무엇보다 심각하게 했었다. 그의 말을 빌면 학부 때 배운 것은 ‘조형성’이라는 형식표현의 방법론이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내용의 충일을 가져올 방법들의 모색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내용성의 빈곤을 채울 방법을 개진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정신적 방황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림이라는 것이 테크닉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철학 등의 내용이 견실해야 된다는 인식을 하면서부터 이를 시작하였다. 이후 철학 등 많은 인문학 서적을 탐독하거나 사색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내용빈곤에 대한 해결을 모색했었다. 그의 모색은 가끔 학부 때 익혔던 조형론의 방법들을 학문과 사색으로 고민하고 찾아 헤맸던 내용성과 접목을 시도함으로써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지금의 전체적 구조를 이루는 부분의 화면들이 바로 방황하던 시절의 노력에 의해 이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시기는 일상적 체험이라는 주제를 확실하게 다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허진의 작품 내용이자 주제인 ‘일상적 체험’은 개인의 차원에서 출발하지만 우리 혹은 역사라는 개념에서 파악되고 추구되고 있다. 그것도 구체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형상성을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형상성 속에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마치 형(形)과 색(色)으로 조형화한 한 편의 드라마틱한 일기처럼 펼쳐진 그의 그림에는 일상인과 일상사물들이 서술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괭이를 든 농민, 연설하는 정치가, 노래하는 가수 등 우리의 주변인물들이 일기의 주인공처럼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 주변에는 여러 많은 사람들과 사물들이 다면적으로 새롭게 이미지화하고 있다. 그것들은 한 인간의, 한 일상의 존재로만 머무르지 않고, 역사적인 존재로 실존함을 보여준다.
이렇듯 작가의 예술적 시각이 다층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은 그의 작업이 단순히 개인적인 유희나 무의미한 작의성에 의존해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실 그의 그림은 여러 조각들의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화면들은 추상 혹은 형상으로서 테크닉이 십분 발휘된 영상미를 보여준다. 화면 개개의 상태를 들여다보아도 하나의 이미지임에는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다른 화면상의 이미지와 상호 대비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환기시켜 놓는 것이 허진의 작품세계가 작는 조형적 미감이다.
이렇듯 형상성으로 표출되는 주제를 그는 여러 개의 화면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그 화면들은 크고 작은 조형양식으로 조립되는데, 주제부분은 큰 화면으로 처리되고 여타의 이미지들은 중간 크기의 화면과 작은 화면으로 구성되는 이른바 ‘주대신소(主大臣小)의 방법을 그는 구사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표출된 형상들은 일상성의 일차적인 성격에서 2차적인 성격으로 변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 매체로서는 평면성, 정면성, 반복성, 이중성, 역사적 순환성. 상황성, 조형적 장식성 등과 상징화, 왜곡화, 나열화 등이 쓰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요소들을 우리의 전통민화에서 찾고 있는데, 그 서술적 조형요소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다시점(多視點), 원근법의 무시, 과거·현재·미래의 동시적(同視的) 표현, 사물의 상호비례 무시, 각 사물의 개별적 색채효과의 극대화, 대칭형·나열형 구도, 사물의 평면화.
이러한 민화의 조형요소들을 작가는 자신의 회화영역에 적용시키거나 변용하면서 자신의 조형어법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특히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적으로 표현하는 순환체계(循環體系) 방법은 하나의 서사시(敍事詩)와도 같은 연대기적인 조형성을 가져다 준다. 그러면서도 화면상에는 동시적 형상으로 드리워져 있으며, 자연의 섭리와 맞물리고 있다.
동시적 표현방법의 대표적인 예로는 과거의 역사적 인물 등을 자신을 비롯한 현존의 주변인물과 사물 등과 병치하는 대비적인 효과에서 볼 수 있다. 또 도식화된 사물의 경우는 비인간화, 소외, 부조리 등의 아이러니로 나타나는 풍자화(諷刺化)된 구열상(龜裂像)을 표현한다. 그리고 상징적인 이미지의 여러 가지 형상들은 주제와 함께 새롭게 조합됨으로써 개개의 형상성 차원에서 확장된 복합적 의미망을 갖게 된다. 그 의미망은 복합적은 조직에 의한 것이지만 주제를 축으로 한 통일성에 의해 확장된다. 따라서 복잡하고 다면적인 형상들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주제의 특성을 확연하게 드러내주는 힘을 갖고 있다. 이러한 조형방법들은 작가의 회화에 있어 서술적 양식으로 대표된다. 전일적(全一的)으로 이뤄지는 상황적 구조, 유기적 혹은 다의성(多義性) 안에서의 통일성 그리고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적으로 총괄하는 시간적인 순환체계로 이룩되는 허진의 독특한 서술적 조형방법은 다분히 작의적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부분을 전체로 통제하는 프레임을 위한 사전계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장방형, 마름모형, 십자형, 화살표형 등 여러 가지 기하학적 형태로 구조되고 있는 프레임은 작가의 제작의도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프레임 속에 여러 가지 형상들을 담고 있는데, 그 형상들은 앞서 언급한 일상적인 체험들로 구성되고 있다. 그 체험들은 형상성 혹은 추상성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 속에 내재하는 것은 상징성, 은유성 등을 포함한 주제를 위한 내용물들이다. 내용물들을 결정짓고 있는 재료와 기법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의 접목으로 설명된다. 마치 내용에 있어 시간적인 순환체계를 갖는 것처럼 재료와 기법 역시 과거와 현재를 혼합하는 방법으로 쓰인다. 그는 전통적으로 정신적 면이 강조됐던 지필묵(紙筆墨)을 실험적인 효용성을 추구할 수 있는 물성(物性)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통적 재료와 기법이 갖는 정신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물성과 자신이 개발한 기법으로 새로운 형상을 부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함축적이거나 문인화적인 그리고 암시적인 전통의 조형방법에 대한 거부였지만, 원천적인 재료와 기법에 있어서는 그 뿌리를 같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전통화의 철학이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생활과 일치하는 철학관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철학관의 표출을 위해 그는 전통 한국화에서는 묵에 대한 보조적 역할에 불과했던 색(色)을 적극적으로 변환시켜 다양한 형상의 발현이 가능케 했다. 이렇듯 전통적인 화론의 방법들을 자신의 체질에 맞게 현대적인 조형어법으로 개발하고 구사함으로써 그의 독특한 서술적 화면을 연출해 보인 것이다. 그 연출의 가장 근원으로는 주제의 현실성과 재료 기법의 혼용에 의한 다양성으로 축약될 수 있다. 특히 재료 기법의 다양한 구사에 따른 혼란과 산만함을 방지하기 위해 유기적 질서를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된다. 그 하나는 화선지를 재로로 하면서 화선지를 적극성을 띤 양적(陽的) 의미로 파악하고 화선지를 구겼다 펼쳐서 얻는 독특한 방법이다. 구긴 후 펼치면 마치 칼로 형상을 해체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방법을 그는 인물의 형상화에 적용시킨다. 이렇게 해서 해체된 형태는 현대인의 소외나 비인간화, 부조리 등 현대사화의 비판적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또다른 방법으로는 장지를 바닥에 눕혀 물을 붓고 그 위에 물감이나 먹을 뿌려 흡수성이 강한 종이를 구겨서 덮는 기법이다. 장지에 묻은 먹이나 물감이 흡수성이 강한 종이에 의해 흡수되어 묻어나는 상태에 따라 조각조각 나누어지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러한 효과는 화선지에 인물을 다루는 것과 달리 일상적 사물을 표현하는데 쓰고 있다. 이것 역시 그가 계획한 의도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조형어법의 하나인 셈이다.
이러한 방법들에 대한 개진을 작가는 대학 4학년 때부터 계획했다고 하나, 조형론의 학업만으로는 소화하기 불충분해 내용의 충일을 연구하면서 그 조형을 조금씩 진전시켜 나갔다. 그 결과 그는 여러 형상들을 복합적이면서도 통일된 주제의식으로 부각시켜 놓았다. 여러 개의 이미지가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로 환기되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일상적인 체험을 여러 삶의 체험과 결부시키면서 공동체적인 문제로서 제기하고 있으며, 현대문명에 대한 해결점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안고 있는 과제는 스스로가 지적했듯이 ‘형상성’의 추구 속에서 빚어지는 모호성의 소화와 복합성에서의 산만성의 처리, 그리고 일정한 수준에서의 한계점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는“일관성 없는 것을 불식하고 시종일관하는 동인(動因)들로 된 애매성에의 실현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으며, 다의성을 바탕으로 한 복합성에서 그러한 점을 수용하되 단일화(單一化)로 지향하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고 말함으로써 자체의 진단과 더불어 발전을 꾀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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