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혜영 Young Maeng

Text: Artist Note

[] 2023 전시서문 _ 갤러리 더플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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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맹혜영
작성일 2023-10-19
조회 116
확장된 회화적 관계망 속에서 다시 읽게 되는 분열된 이미지에 대하여 맹혜영 작가는 버려지고 부서진 것의 이미지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작업해 왔으며 이번 전시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작업으로 보여주고자 한다고 하였다. 작가는 그의 작가노트에서 ‘식별 불가능’한 상태의 ‘분열된 이미지’는 쾌와 불쾌의 감정을 동시에 일으키며 무엇인가 부서져 내리는 순간의 경험은 존재론적 고통을 일으키게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이를 인식하게 되면서 여기에 주목하는 작업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의 작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가 표현한 분열된 이미지들 안에는 다양한 개별적 이미지들도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작업에서 주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느 한 지점으로부터 깨진 유리를 비롯하여 꽃이나 기타 여러 가지 사물들이 폭발하듯 파편화되어 쏟아져 나오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가위, 드라이버, 나사못, 모래시계, 인형 등의 사물들인데 이 사물들은 개별적으로는 어떠한 연관성을 찾기 어렵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폭발적 이미지 혹은 환영적 이미지에는 그것과 겹쳐져 있는 고양이나 인형 또는 인간의 형상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겹쳐져 있는 것도 보인다. 그리고 특별히 이렇게 겹쳐진 이미지들 속에는 폭발적 이미지와는 또 다른 서사, 즉 피부가 벗겨지고 갈라져 있는 것과 피부 안쪽으로 로봇의 형상이 보이는 것을 볼 때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또 다른 맥락의 흔적들이 삽입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이보그(cyborg)인지 인간 혹은 동물의 형태의 AI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나 그것의 흔적으로 보이는 것들로부터 그 이전에 정확히 어떤 특정한 사건이 있었고 지금 보게 된 상황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명확히 판단하는 것은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건 자체를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고 단지 이미지로 변환되어 전달된 정보라는 점에서 볼 때 흔적으로 남아 있는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판단하기에는 정보가 매우 제한적인 것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폭발 혹은 환영의 이미지로 표현된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폭발하거나 분산되는 어느 한 순간의 이미지를 가지고 사건 전체 상황을 파악해내기는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꿈과 같은 환영의 이미지가 담긴 작업의 경우에도 꿈 속 이미지 가운데 어떤 일정 부분이 현실과 닮아 있거나 반대로 일정한 차이가 난다고 해도 이것이 현실이거나 현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명백한 근거로 제시 될 수는 없다.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이와 같이 분산적 방식의 작업을 보여줌으로써 작업을 감상하는 이들이 모호성이라는 미묘한 수렁 속으로 빠져들도록 만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인간 혹은 동물과 기계가 결합된다는 것은 생명체와 비생명체가 결합되는 것이기에 과학적 실현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이질적인 현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통념상 그러한 이미지를 보게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매우 당혹스러운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상에서 흔히 상상해 보지 못했던 상황을 직면하는 것이고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언케니(uncanny)한 느낌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추상적 방식으로 무엇인가 폭발하는 것 같은 상황을 표현한 부분에서도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바깥을 향해 많은 것들이 흩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폭발하여 분산되고 있는 파편들 중에는 예상치 못했던 사물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여러 가지 공구나 장난감과 같은 것들인데, 이것들이 각각 고유의 사물 형태를 유지한 채로 파편처럼 분산되고 있는 것을 살펴보다 보면, 이 폭발과 같은 장면은 어떤 화약 같은 물질이 폭발한 결과 어떤 특정한 물질이 파편화되고 분산되고 있는 장면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판도라와 같은 상자가 세상을 향해 열려짐으로 인해 그곳으로부터 세상을 향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시 말해 현실 너머의 세계가 현실 세계와 교차되면서 새로운 세계가 드러나는 어떤 변화의 계기를 던져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이다. 작가의 작업 중에는 사이보그처럼 보이는 고양이와 강아지만 일상적 공간에 등장하는 작업에도 이와 비슷한 부분이 담겨있는 것을 보게 된다. 꿈 속인지 일상 속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계와 동물이 결합된 형태의 사이보그가 일상에서 인간과 정서적으로 교감해왔던 반려동물의 위치를 대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을 보게 되면 그 비현실적 상황으로 인해 그것을 보는 이의 심상에 알 수 없는 모호함과 낯설음의 정서를 느끼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가상, 인간과 기계, 실재와 비실재의 영역이 교차되거나 치환되고, 서로 결합되거나 혼성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을 접하게 될 때 인간은 기존의 관념적 태도로 인해 내적 경계선 혹은 저항선과 같은 지점을 감지하게 될 수 있는데 이러한 경험은 혼란스러움과 같은 정서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혼란스러움의 틈새로부터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게 되는 양가적 상황에 대처하고 관계하는 법을 모색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매체의 변환의 시대, 기술적 변환의 시대에서‘무경계의 회화’라는 주제를 통해 탈경계적 시각에 대한 대화를 시도하고자 한 것은 이와 같은 경향의 작가적 태도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고유한 경계와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 예를 들면 인간 혹은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고유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로부터 이미지들을 서로 교차 혹은 결합시키거나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실험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작업을 통해 이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수행해 오는 가운데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탈경계적, 탈영토적 시각의 작업을 점차 선명하게 보여주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가가 특별히 이러한 작업을 사진 이미지를 전사하거나 드로잉적인 페인팅을 부가하는 가운데 서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행위를 통해 진행해 왔다는 점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작가가 그의 작업 가운데 표현한 것처럼 깨진 유리잔 너머로 보이는 부서진 이미지들과 각기 분리되어 있던 것 같았던 이미지들을 몽타주적인 방식에 의해 관계를 맺도록 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본디 전체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이와 같은 몽타주적인 결합 방식에 의해 관계 맺게 된 이미지들은 이미지 사이의 간격을 노출시키거나 상쇄시키는 작용을 하게 되면서 시간성에 종속된 선형적 네러티브를 초월하여 세계에 대한 다른 시각을 열어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은 눈 여겨 보게 되는 지점이다. 이는 모든 관념적 경계를 초월하는 작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하나의 개념적 토대가 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인데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들로부터 그것을 초월하고, 그것의 경계를 넘어서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작가는 몽타주적 작업 방식이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시각에는 비선형적 시간성 혹은 불확정적 공간성으로 지칭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개념으로의 도약과 같은 어떤 특별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 방식을 통해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작가가 자신의 작가노트에서 들뢰즈의 ‘시간 이미지’를 인용하여 작업에 대해 설명하게 되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탈경계적이며 확장적 회화를 모색해오게 된 작가적 태도 및 근거를 작업 전체의 흐름 가운데 미리 전치시키기 위한 하나의 설정이었던 것으로 읽혀진다. 작가는 이를 토대로 하여 자신의 작업이 미학적 공간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간, 윤리적 공간 등 다양한 방향과 영역에서 더 확장적으로 해석되고 논의 될 수 있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작업 가운데 보이는 파편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여러 알레고리적 요소들, 즉 여러 가지 공구나 모래시계, 인형과 인간, 그리고 기계적인 것들은 서로 전혀 관련이 없고 각기 다른 네러티브를 갖고 있는 사물들일 수 있지만, 동시에 작가가 그려낸 확장된 회화적 관계망 속에서는 각기 서로 다르지만 간극과 관계 사이에서 서로를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요소와 장치가 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탈경계적 이미지 요소와 시각적 장치들을 제시하면서 관객들에게 각기 자신의 상상 속에서 상호작용하고 이미지를 덧붙이는 가운데 각기 다양한 해석을 이어나가 볼 것을 권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위해 이렇게 확장된 관계망의 장을 일상과 가상의 영역 사이에 열어 보이며 작업 가운데 그 길을 안내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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