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사송 Rosasong

Text: Artist Note

[] 2019 전시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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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로사송
작성일 2023-10-14
조회 39
중층적 체계에 감춰져 있는 보이는 세계 너머를 감각한다는 것에 대하여 송민자 작가는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숫자와 기호를 소재로 하여 작업해 오고 있다. 작가가 이와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스스로가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기표적 체계를 의지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최근 작업에서는 기억작용에 대해 주목하며 작업해오고 있는데 이러한 작업 역시 기표적 체계에 대한 확장적 사유와 함께 이로부터 마주치게 된 지점들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에게 있어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란 기억으로부터 사고작용을 통해 차이를 인식하고 그 의미를 식별해내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가 숫자나 기호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작가가 어떤 특정한 기억들을 떠 올리게 되는 과정에서 모호하고 불명료했던 것들이 기억행위를 통해 기표의 지시적 작용처럼 의미가 명료해지는 것을 체험적으로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Silence' 시리즈 작업을 보면 이러한 작가의 경험과 시각에 잘 드러나 있는 것 같다. 백색 캔버스 표면을 뚫고, 마치 들고 일어나는 것 같은 형태의 숫자 혹은 기도들을 보면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들이 기억 행위를 통해 분명한 의미로 떠올리게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 그대로 느껴진다. 작가가 보기에 하얀 캔버스 평면은 어쩌면 백색의 침묵 공간처럼 보였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망각의 호수처럼 잔잔했던 공간은 그곳에 가라앉아 있었던 기억의 흔적들이 어떤 계기로 인해 움직이게 되면 그곳은 이미 그저 백색의 평면일 수만은 없다. 마치 선명한 기억이 어느 순간 하얗게 잊혀진 것 같은 머리 속을 뚫고 나와 점차 더욱 명료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때처럼 송민자 작가의 작업에서는 공간을 점유하며 백색 평면 위로 불쑥 솟아올라 하나의 기표의 형태로 부각된 물질화 된 기표를 선명하게 확인하게 된다. 숫자라는 관념적 기표가 실제 사물이 되어 보고 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인간이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이 기억과 망각이 상호작용하는 현상과 유사하다고 보았던 것 같다. 세계 속 대상의 표면에 보이는 것들은 그 안에 담겨있거나 감춰져 있는 것들과 함께 작동되고 있다는 평소 생각이 연장되고 것이다. 인간은 삶 속에서 수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그 중 일부분을 기억하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기억된 것들마저 다시 망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잊혀졌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떠올라서 눈에 보이는 현실을 달리 보게 만들기도 하고 현실을 사로잡아 기억 가운데 얽매이게 만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감각하고 경험한 것들은 의식과 무의식에 다층적으로 기억되어 있다가 일정한 태도와 습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작가가 주제로 제시하고 있는 ‘Double Codes’라는 것은 가시적 세계와 함께 가시적 세계 너머에 있는 영역들에 대해 고찰해온 작가의 시각이 함축된 상징적 명제이자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세계와 사물을 인식하는데 있어 표면에서의 시각적 현상과 함께 그 현상이 있게 된 지점 너머에 대해 함께 바라보는 가운데 세계를 더 근원적으로 통찰해내는 시각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시적 표면 너머를 바라보거나 감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시각의 표면 너머를 의식하며 그곳에 더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곳은 물론 모호하고 언어적 체계로 전달하거나 묘사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 불분명한 부분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보기를 상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작업에서 텅빈 기표와 같은 알 수 없는 숫자들과 기호들의 나열에 의해서 시도되고 있지만 이러한 작업이 결국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 과연 어떠한 느낌인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전달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각적 표면에 감춰져 있는 것들을 전제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그 중층적 의미들을 읽어가고자 한다면 표피적 현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좀 더 실체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작업에서 이러한 태도 견지하는 가운데 시각적 표면 너머를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를 묵묵히 반복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시각적 현상 너머를 실제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현상 너머를 끊임없이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 그 자체를 작업과정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태도가 보여주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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